경력 휴식기 회고 (2023.06–2023.09)

경력 휴식기 회고 (2023.06–2023.09)
네...
1년 동안 취업 준비를 2번 하는 사람이 있다?

퇴사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실컷 놀다 올해 3월에는 취업하리라 말하고 다녔는데 눈 깜짝할 새 9월이 끝나가는 중.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던 걸, 쌀쌀해진 날씨에 문득 오래 놀았구나 싶다.

뭐, 사실 취업을 못 해서 이러고 있었던 건 아니고.


취준생인 척하는 백수인 척하는 취준생

경력 휴식기 회고 (2022.11–2023.05)
백수의 취업 준비 기록 놀고 먹다 진짜 취업 ‘준비’ 만 했다! 주변에 나처럼 퇴사하고 쉬는 사람들이 점점 보인다. 지금이 2030 비경제활동인구가 역대 최고치라고. 채용 시장이 나쁜 것은 사실이고, 제안도 예전만큼 안 오는데 심지어 내가 회사를 찾는 것도 어려워진 요즘이다. 그간의 경험 때문일까. 취업이나 채용이나 늦더라도 신중하게, 보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인데(

지난 경력 휴식기 회고를 보았다면 알겠지만, 5월부터 진작 이력서를 넣고 있었다. 사실 마음속엔 2개, 많게는 4개 정도의 회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일단 2개 중 하나는 합격. 하나는 아직 지원조차 안 했다. 이유는 남은 하나의 채용 프로세스가 굉장히 빠르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

결과를 비슷한 시기에 받고 싶어 지원 일자를 맞추던 중, 갑자기 지인에게서 자기네 팀에 TO가 생길 예정이란 소식을 들었다. 관심 없는 회사지만 관심 있던 팀이었고, 일단 빅테크는 못 참지.

하지만 채용 프로세스가 평균 3개월. 1개월도 아니고 무려 3개월이라는데. 합격한 회사에는 괜히 민폐 끼치기 싫어 아쉽지만 못 간다고 말씀드렸고, 마찬가지로 지원도 미루게 되었다. 10년 가까이 일했는데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나중의 이야기지만, 커피챗까지 진행했던 이 회사는 안타깝게도 TO가 나오지 않아 무산되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도 모른 채 간 제주도 여행. 근데 여행 이야기는 잠깐 뒤로 하고.

그냥 취업해!!! 취업하라고!!!!!

나 최규민, 한계를 모르는 남자

진짜 한계를 몰라서 시원하게 말아 먹었다. '취업 준비 3개월 더? 하면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너무 길어진 취업 준비에 이 짓을 꼭 해야 하나? 라는 의문에 빠졌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여겼지만 괜찮을 줄 알았지. 메타인지(라고 쓰고 주제 파악)가 잘 되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날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다.

지난 번아웃이야 늘 그랬듯 가끔 한 번씩 와서 짧게 지나가는 거라지만, 이번엔 뭐 취업할 의욕이 없으니 제대로 준비가 될 리가 있나. 취업 준비라는 핑계로 코딩이나 좀 하다가(그래도 코딩 사랑하시죠?), 앱 몇 개 만들며 창업 연습이나 할까 하다가, 뒤늦게 정신 차리고 할 일을 시작했다. 졸지에 취업 준비만 두 번 하게 된 셈.

늦긴 했지만 다행히도 소득이 없지만은 않은데, 지난 회고의 할 일을 돌아보자.

  • ☑ 커리어 회고
  • ☑ 스토리텔링
  • ☑ 면접 준비
  • ☑ 코딩 테스트 준비
  • ☐ 입사 지원
  • ☐ 새로운 회사 찾기 (본격적으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몇 개 찾긴 했다)

10년짜리 커리어 회고

내가 언젠가 커리어 회고를 작성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약 10년간의 경험을 글로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정돈되지 않은 글이 길어지니 읽히지도 않고. 그래서 생각을 끌어내고 시각화도 할 겸, 마인드맵으로 풀어보았다. (처음 약속과는 다르게 커리어 회고가 블로그에 다루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야~ 뭐 보이지도 않네.

내 경험과 그때의 판단, 지금의 나는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든 것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은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 꽤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많은 걸 얻기 보단 큰 걸 얻게 된 셈.

덤으로 따라온 게 있다면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사실 나는 내 강점이 뭔지도 모르겠고, 주변인들이 나를 올려치기 한다고 생각했는데(지금도 일부 동의하지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쉽게도 그 강점이 하드 스킬은 아닌 듯. 창업멤버로서 도전해온 경험들이 밀도 있었던 만큼,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소홀했던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물론 기술 측면에서의 하드 스킬과 지식이 연차 대비 부족하단 거지, 구현 등의 프로그래밍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것은 주니어일 때부터 갈고 닦아야 할 기본기인걸?)

직장인 일대기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면서 계획했던 스토리텔링도 커리어 회고를 바탕으로 하게 되었다. 사실 회고가 없었더라면 잊혀진 기억을 겨우 지어내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에 불과할 뿐이지 않았을까? 덕분에 내 부족한 점을 강점으로 보완하자는 전략도 생겼다. 여기서 스토리를 길게 다룰 마음은 없으니 앞뒤 다 생략하고. 잘 쳐준다면 나 자신을 성장 가능성이 높은 T자형 인재라 부를 수 있을지도. 근데 T라기엔 좀 넓고 얕은 것 같은데, T 대신 ㅜ로 하자. 너 ㅜ야?

스토리텔링과 함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도 고쳐 쓰게 되었다. 이전에도 꽤나 괜찮았지만, 그럴듯한 내용들로 잘 채워진 것과 내 강점이 잘 담긴 건 다른 얘기. 포맷은 크게 손보지 않은 채, 임팩트 없는 경험은 빼버리고 강점 위주로 다시 채웠다. 그 결과, 절반이 소프트 스킬이거나 UX 직무 경험인데, 개발자 이력서가 이래도 되나 싶을 지경. 물론 첨삭도 여러 받았고 웬만하면 서류 통과는 할 수준이라 생각하지만, 테크 리더처럼 깊이에 집중하는 포지션은 어차피 면접에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부정적인 경험의 스토리도 재구성했다. 사실 내 스타트업 창업멤버 도전의 끝은 감히 실패라 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싸우고 공중분해 된, 그런 극단적인 결말은 결코 아니다. 회사는 새로운 제안과 함께 날 잡으려 했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풀어나가다 보니 겪었던 문제와 해결 과정이 합리적인지와는 무관하게 내가 부정적인 사람으로 비쳐지는 건 피할 수 없겠더라. 지금은 무덤덤하지만, 막상 답변하다 보면 그때의 감정이 섞일 수도 있을 테고. 답변은 잘했다 치더라도 이런 얘기를 계속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 때쯤,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고 보완하리라 결심했다. 단편적인 사건 하나하나로 보았을 때는 말 그대로 사건이라 쉽지 않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다 보니 사건보다 현상에 집중하게 되면서 이제야 좀 정리가 된 듯.

알고리즘은 날 미치게 해

랭크 올리고 뱃지 모으는 맛이 있다. https://solved.ac/profile/choegyumin

드디어 시작했다. FE는 알고리즘 테스트보다 과제 테스트가 더 많기도 하고(유명한 기업으로 한정하면 반반쯤 되는데, 이력서가 많이 들어오니 그런 듯), 나 또한 FE는 시간복잡도를 고려한 사고만 할 줄 안다면 그 이상은 검색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늘 미뤄왔던 일인데, 취준생이 뭐, 이것저것 가릴 처지인가?

하루에 2문제. 어느 날은 못 풀기도, 어느 날은 더 풀기도 했지만, 아무튼 꾸준히 풀었다. 아직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통과를 보장하는 레벨은 아니라, 이번 구직에는 써먹지 못하더라도 다음 구직에는 써먹을 수 있도록 장기 계획으로 삼고 있다.

목표는 solved.ac(백준)의 클래스 3 문제를 능숙하게 풀고, 클래스 4 문제도 꽤나 익숙해지는 것. 처음 목표였던 프로그래머스 레벨 3가 백준(solved.ac) 기준으로 실버-골드 랭크. 클래스로는 3-4 정도 된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클래스 3.

장기 계획이라는 점에서, 최근엔 면접 준비와 과제 연습을 이유로 잠시 멈춘 상황. 이틀 이상의 시간을 주는 과제는 전혀 준비할 필요가 없는데, 몇시간 이내에 풀어야 하는 과제는 걱정이다. 이런 과제는 환경도 제약이 클 테고, 무엇보다 너무 오래 쉬어서 말이지.

GitHub - choegyumin/algorithms: https://solved.ac/profile/choegyumin
https://solved.ac/profile/choegyumin. Contribute to choegyumin/algorithms development by creating an account on GitHub.

그동안 해결한 문제들. 프로그래머스에서 풀이한 문제도 꽤 되는데, 나중에 옮겨두어야겠다.


제발 나가서 일도 좀 하고, 친구도 만나고 그래.
걱정이 돼서 그런다.

사실 백수가 되며 생긴 가장 큰 문제는 하루아침에 루틴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점심에 일어나서 새벽에 자기 일쑤. 늦잠을 자도, 학습을 소홀히 하고 성과를 못 내도, 뭐가 됐든 일상에 지장만 없으면 딱히 태클 걸 사람이 없다.

근데 이젠 지장 있는 게, 살은 찌는데 운동은 커녕 나가지도 않아서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프고, 가끔 나가서 햇볕 잠깐 쬐고 오면 오후 6시도 안 되어서 졸리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워킹 데드가 따로 없다.

백수라고 해도 처음부터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마 최근에 덥다고 안 나가고 집에서 주로 작업한 게 화근인 듯. 이건 아니다 싶어, 지난 회고에서의 루틴을 추가하고 수정했다.

  • ☑ 생활 습관 유지 - 이른 기상·취침, 환기, 산책 등
  • ☐ 글 쓰기
  • ☑ 책 읽기
  • ☐ 운동
  • ☑ 스트레스 관리 (취업 준비를 덜 해서 스트레스도 덜 받았다 ㅎ)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 습관

외출할 일이 없는 날에도 의도적으로 바깥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렸다. 별 건 아니지만, 제시간에 창문 여닫고, 까짓거 돈 좀 쓰더라도 밖에서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 해 30분씩 보낸다.

사소한 생활 습관과는 별개로 할 일도 관리하고 있는데, 데일리 체크인으로 오늘 할 일을 확인하고, 체크아웃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마구잡이로 갈겨 쓴 아이디어 노트를 정리하고, 오늘 한 일과 내일 할 일을 훑어보는 정도.

내 TickTick 앱. 사용한 지는 얼마 안 됐다. 책 읽기 같은 것도 있지만, 면접 준비를 시작한 이후로 성과가 처참해서 잘랐다.

읽기·말하기·듣기·안 쓰기

글 쓰기...는 그냥 기록이 필요할 때만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계획 없이 사는 P의 인생) 습관으로는 절대 될 것 같지 않아서 대신 책을 읽기로 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 씩 읽는 편이라 어려운 일은 아닌데, 다른 일정 때문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아직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글 쓰기보단 잘 지켜지는 중.

아무튼 문학은 아니고. 내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대부분 일과 관련된 서적을 말하는데, 최근에 산 책은 A/B 테스트, 소프트웨어 장인, 조직의 재창조, 민주적 결정방법론. 사놓고 방치 중인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먼저 읽으려 했는데, 시간을 쪼개서 읽는 거라 eBook은 쉽게 꺼내 읽지만, 종이책은 손이 잘 안 간다. 억지로 들고 다니며 읽느니 차라리 북스캔이라도 맡길까 생각 중.

알라딘: [중고] (새책) 7차 초등학교 국어 말하기 듣기 쓰기 6-2 교과서 (190-6)
더 이상 억지로 글을 쓰지 않겠어.

운동

큰맘 먹고 이틀 사흘 하면 병나고, 의욕 떨어져서 또 쉬기를 반복. 웃긴 건 운동을 해서 아픈 게 아니고 그냥 재수가 없는지 매번 잔병치레 중인데, 바로 며칠 전에도 다래끼와 결막부종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배탈도 겹쳐서 고생했다.

하지만 내 의지가 부족했던 거라면? 아, 내일부터 바로 운동 시작한다.


나는 취업 같은 건 잘 모르겠고

3개월간 논다고 놀았는데 막 격렬하게 논 것 같진 않다. 일단 여행을 다녀왔고, 이후로는 매일 혼자 작업하는 게 외롭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스프린트에 참여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입사를 거절하고(지인이랑 얘기할 때마다 미안하다) 다녀온 제주도. 그리고 얼마 전 다녀온 정선에서의 호캉스. 제주도에선 신나게 놀았고, 정선에선 요가, 명상 등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지난 회고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생략.

정선에서 묵은 호텔 뷰

키유의 스프린트

오랜 시간 혼자 작업하다 보니 슬슬 좀이 쑤실 무렵, 오픈 채팅방에서 '구글 스프린트를 체험해보는 테오의 스프린트를 체험해보는 키유의 스프린트'가 있다길래 냅다 참여했다.

키유의 테오 스프린트(체험) 1기 회고
테오 스프린트를 체험시켜주는 키유의 스프린트 1기!

대부분 익숙한 일들이었지만 오랜만이라 반가울 따름. 스프린트야 당연하고, 유저 스토리 맵과 스토리보드는 자주 만들진 않았더라도 옛 기억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사람들과 FigJam에서 하이파이브 하는 건 또 어찌나 즐겁던지.

조금 더 내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스프린트는 멤버 중 유일한 시니어(?)로서 내가 취해야 할 액션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예를 들어, 지금 남들이 인지 못 한 문제를 발견했는데 당장 개입해야 하는가, 그럼 내가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 스프린트라는 개념은 같아도 그 성격이 회사의 것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회사였다면 팀의 목표와 행동 양식이 뚜렷하니 딱히 고민할 일이 아니었을 테지만, 이 경우엔 충분히 고민해 볼 주제였다.

뒤늦게 하나 깨달은 것은 내가 PL이었다는 점. 개입은 최소한으로 하더라도 capacity를 고려해 scope를 제한하는 건 당당히 요구했어야 했는데, 내 역할을 깨닫기보다 내가 주니어들의 생각을 해치고 제한한다는 것에 대해 갇혀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설득했을 텐데 왜 이렇게 좁은 사고로 접근했을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놓이는 것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면접이나 과제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팀을 리드한 경험은 있지만 그게 개발 조직은 아니었던 지라, 프로젝트 개발이 물 흘러가듯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이건 그저 역량 부족일 뿐이라 훈련이 필요할 듯. 그래도 내가 이해한 이 스프린트의 가장 큰 목적은 협업 경험을 쌓는 것이기에, 나름대로 일의 진행 과정을 가르치고 직접 실천해보도록 했는데, 이거라도 멤버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이제 일 하러 가야지?

추석이 지나 10월에는 이력서를 넣고, 가능하면 11월에는 최종 합격하는 게 목표다. 갈 곳이 정해지면 남겨둔 일도 출근 전에 마무리하고. 지인에게도 이번에는 꼭 이력서를 주겠다고 못 박았다. (생각해보면 죄다 임직원 추천이다. 그만큼 잘 살았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온전히 내 능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관심 있던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 커피챗도 진행했다.

지난 회고는 액션 아이템과 함께 마무리했는데, 이번엔 취업 준비와 운동 말고는 딱히 남은 게 없네. 남은 기간 준비 잘 해보는 걸로.

세상에 이런일이 레파토리. :)
"규민아~ 이제는 사람답게 건강도 챙기고 돈도 벌고, 개발자로 오래오래 잘 살아야 한다~!"